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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감옥, 감각 있는 아파트로 재탄생

2018-07-09

‘지금 당신은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파트, 주택, 빌라라고 답할 것이다. 미국 버지니아에는 백여 년 전 지어진 감옥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Liberty Crest Apartments 

 

언뜻 보면 학교 같기도, 상가건물 같기도 한 이곳은 1916년부터 2001년까지 운영된 로튼 교정 시설(The Lorton Reformatory)이다. 이후 오랜 시간 흉물스럽게 방치된 낡은 감옥이 개·보수 작업을 거쳐 지난해 5월, 감각적인 아파트로 다시 태어났다. 시공을 맡은 엘름 스트리트 개발(Elm Street Development)은 감옥을 주거공간으로 바꾸면서 리버티 크레스트 아파트(Liberty Crest Apartments)라는 이름을 붙였다. 범법자를 억압하고 가두던 폐쇄된 장소가 자유 마루(Liberty Crest)로 정반대의 의미를 갖게 된 점이 흥미롭다.

 

구조와 소재가 색다른 아파트
내부에서 과거 교도소의 삭막한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깨끗한 흰색 페인트, 은은한 LED 조명이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다. 주방은 짙은 밤색 찬장으로 깔끔함은 물론 기능성까지 갖췄다. 리버티 크레스트 아파트가 다른 아파트들과 차별화한 점은 구조와 소재이다. 미리 구획을 정해 같은 크기의 아파트를 여러 채 만든 것이 아니라 기존 건물의 내부를 알맞게 재단한 형태이기 때문에 집집마다 구조가 다르다. 어떤 집은 주방 맞은편에 창문이 있기도, 또 어떤 집은 거실과 침실이 복층구조이기도 하다. 크기 또한 제각각인데 700sqft(약 65㎡)부터 1400sqft(약 130㎡)까지 다양하다. 

 


주방과 2층 계단(사진출처: libertycrestapartments.com)


침실(사진출처: libertycrestapartments.com)

 

미국에서 대부분의 집들이 나무 합판으로 지어지는데 반해 리버티 크레스트 아파트는 콘크리트와 벽돌을 사용했다. 과거 이곳은 감옥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단단하고 두꺼운 벽이 필요했다. 이렇게 견고하게 지어진 감옥은 백 년이 훌쩍 지나도록 외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아파트로 개조하면서 벽돌의 질감을 그대로 살려 흰색 페인트만 덧칠했다. 침실을 제외한 거실, 주방에 콘크리트 바닥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창틀 역시 원형을 그대로 유지했다.

 

재소자들이 식사를 하던 식당은 커뮤니티 공간으로 바뀌어 입주자들이 모여 당구를 치고,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는 공간이 됐다. 체육관은 피트니스센터가, 야외 운동장은 수영장이 됐다.

 


페인트칠 된 벽(사진출처: libertycrestapartments.com)


창틀, Tim Peterson Photography
커뮤니티 공간(사진출처: libertycrestapartments.com)

피트니스 공간(사진출처: libertycrestapartments.com)

 

국가사적지가 된 교도소
다섯 단계로 나뉘는 보안 등급 가운데 로튼 교도소는 중간등급(medium-security prison)이었다. 주로 마약, 절도 같은 중범죄자들이 수용됐다. 당시 로튼 교도소 건립을 지시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대통령은 신선한 공기, 자연 채광, 값진 노동이 죄수들의 재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담장과 벽을 없앤 열린 교도소를 만들었다. 대학 캠퍼스를 연상시키는 대지에 전통적인 셀블록(cellblock) 방식의 수용동을 거부하고 방들이 나란히 줄지어 있는 기숙사형 건물을 지었다. 모든 방에서 녹색 잔디와 햇빛을 볼 수 있다.

 


감옥으로 이용될 당시 모습, Alan Gilbert Photography

감옥으로 이용될 당시 모습, Alan Gilbert Photography

 

로튼 교도소는 가두어 감시하는 역할의 교도소가 아닌 '노동을 통한 교화'에 초점을 맞추고 이들을 경작지 농사 인력으로 활용했다. 1940년대에는 수감자를 위한 직업 프로그램이 추가돼 이곳에서 제복이나 맨홀 뚜껑을 생산했다. 교소도 안에 가마를 지어 벽돌을 대량 생산하기도 했다. 특히 로튼 교도소를 증축할 때 이곳에서 생산된 벽돌과 버지니아 로튼 지역의 나무를 이용해 재소자들이 직접 쌓아올렸다. 

 

로튼 교도소의 실험적인 운영 방식은 상당히 혁명적이었다. 교도소가 문을 닫은 이후 2006년, 이곳은 국가 사적지(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로 등록됐다.    

 

엘름 스트리트 개발 회사의 프로젝트 매니저인 잭 퍼킨스(Jack Perkins)는 “역사적인 건축물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개·보수 공사를 했다”고 밝혔다. 또 “일부 역사적인 곳은 기록적인 목적과 해석의 용도로 보존되겠지만, 대부분은 입주자들의 편의시설로 탈바꿈했다”로 덧붙였다. 실제로 낡은 수도, 배수관, 전기시설만을 교체했을 뿐 주요 골격은 그대로 활용했다. 심지어 수용동을 구분하던 팻말, 재소자들의 낙서, 경고문, 감시탑까지 그대로 보존했다. 


리버티 크레스트 아파트의 임대율은 80%에 육박한다. 교도소였다는 과거 때문에 입주를 꺼릴 것 같지만 실제로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생각은 달랐다. 한 입주자는 “막상 이사를 하고 보니 이곳이 교도소였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다. 특별한 공간에서 살게 돼 오히려 기쁘다”고 전했다. 

 


'무단 방문 금지, 위반자는 징계함' 경고 문구 


 재소자가 남긴 낙서
'허가 없이 들어오지 마시오' 경고 문구


감시탑(사진출처: libertycrestapartments.com)

 

뉴욕 소호 거리처럼
‘로프트(Loft)’의 사전적 정의는 '예전의 공장 등을 개조한 아파트'이다. 결과물로서 로프트는 대단히 성공적이다. 뉴욕 소호 지역의 로프트가 대표적이다. 항구도시 뉴욕은 과거 무역산업도시로서 초기 산업시대에 공장이 밀집했다. 시간이 지나 2차 산업이 쇠퇴하면서 공장들이 서서히 문을 닫았다. 뉴욕시는 버려진 공장 건물을 놀리면서 부랑자 소굴로 방치하느니 가난한 예술가들을 위한 저렴한 임대 사업을 고안했다. 예술가들이 몰려들자 자연스럽게 미술관과 표구사가 생겨났고, 그들의 작품을 사기 위해 돈 많은 사업가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이들 사업가들의 눈에는 예술가들이 로프트에서 사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그렇게 낡은 건물의 철근 구조물이 그대로 드러난 높은 천장의 주거 형태가 뉴요커의 상징이 되었다. 돈 많은 사업가들이 모이자 거리에 명품숍이 들어섰다. 오늘날 소호 거리가 명품거리로 인식되는 배경이다.

 

버지니아 리버티 크레스트 아파트는 제2의 소호가 될 수 있을까? 오랜 시간 사람의 발길이 끊겼던 2,324ac(약 9,400㎡) 공간이 대규모 로프트로 변신한지 이제 일 년 남짓. 이 낡은 감옥터가 앞으로 어떤 문화, 예술, 경제적 가치를 띠게 될지 기대된다.  

 

글_ 이소영 워싱턴 통신원(evesy02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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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워싱턴 #감옥 #아파트 #로튼교정시설 #리버티크레스트아파트 

이소영 통신원
워싱턴 D.C.에 거주하며 여러 매체에 인문, 문화, 예술 칼럼을 쓰고 있다. 실재하는 모든 것이 디자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보다 쉽고 재미있는 소식으로 디자인의 대중화에 앞장서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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