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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스토리×디자인] 색채 신비론_ 눈으로 포착하고 마음으로 느끼는 색깔 이야기

2018-11-30

‘거렁뱅이는 남들 눈에 대한 두려움 없이 모든 색을 입는다.’ - 18세기 영국의 극작가 찰스 램(Charles Lamb)

 

색채란 예술, 음악, 패션, 요리, 감정과 심리상태에서 비즈니스와 산업에 이르는 방대한 영역을 좌지우지하는 한편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빈부를 표시해주는 지표이자 인간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선택 가능성, 조화와 부조화, 자만, 허영을 표현해주는 매개체임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명언이다.

 


빛과 자연은 색채의 영원한 영감의 원천이다. 잉고 마우러와 악셀 슈미트가 공동 디자인한 〈J.B. Schmetterling(Butterfly)〉 천정걸이 조명등 디자인, 2011년 작품. 입으로 불어 제작한 유리, 플라스틱, 놋쇠, 할로겐 전구, 46x 32cm. 소장: Cooper Hewitt, Smithsonian Design Museum. Photo: Matt Flynn © Smithsonian Institution

 

 

19세기 말~20세기 초 프랑스 인상주의 회화의 거장 클로드 모네(Claude Monet)는 “색은 하루 종일 나의 강박이고 기쁨이자 고뇌”라고 표현했다. 하루 동안 햇빛의 변화에 따라 색이 시시각각 달라 보이는 자연의 인상을 그림으로 그렸던 모네에게 색채는 환희와 고통을 오가는 창작의 원천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지난 11월 15일 뉴욕 크리스티 저녁 경매장에서 세계 미술 경매 사상 최고 경매가에 작품을 낙찰시킨 영국 화가 데이빗 호크니(David Hockney)는 “나는 색채 속에서 사는 게 더 좋다”고 말했다. 그렇듯 호크니는 밝은 태양과 따뜻한 기후 속에서 선명한 색채를 발산하는 캘리포니아 풍경이나 수영장에 넘실대는 물을 즐겨 그렸다.

 


페르소즈(J. Persoz)의 〈직물 색채의 이론과 실무에 대한 논문(Traité théorique et pratique de l'impression destissus)〉,1805~1868년 출간(4판). 소장: Smithsonian Libraries. Photo: Matt Flynn © Smithsonian Institution

 

 

근대 사진예술의 거장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은 1950년대부터 보편화되기 시작한 컬러사진을 가리켜 ‘색은 허튼짓’이며 천박한 것이라 비난하며 흑백사진을 고집했지만 사적으로는 컬러 사진의 출현으로 사진을 보는 눈에 전환을 겪었다. 컬러 사진을 정당한 예술분야로 정착시킨 장본인 윌리엄 이글스턴(William Eggleston)은 “세상은 총천연색이고 우리는 그 사실을 거스를 수 없다”고 말하며 1970년대 이후 컬러 사진의 새장을 열었다. 그로부터 예술 사진은 흑백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무너지고 총천연색 사진은 사진계의 구시대적 인습에 대한 저항과 도전을 상징하게 됐다.

 


색채는 자연에서 온다.

 

요하네스 이텐(Johannes Itten)의 7색상층과 12색생환(Color sphere in 7 light values and 12 tones), 47×32.5cm. Photo: Matt Flynn © Cooper Hewitt, Smithsonian Institution

 

 

지난 4천 여년 과거, 인류는 옷감, 종이, 질그릇과 유리 제품 같은 일용품에 색상을 더하기 위해서 동식물과 광물 등 자연에서 안료를 채취해 썼다. 유리제품에 푸른빛을 주는 그 유명한 코발트 블루는 약 2천 여 년전 시리아에서 탄생했고, 멕시코 전통의상에 쓰이는 보라색은 바다 달팽이에서 추출한 안료로 염색된 것이다. 19세기 인간은 실험실에서 석탄에서 추출된 타르에서 인공 합성 안료를 만들 수 있게 된 이래, 색채 재료 기술과 혁신을 거듭하며 세상은 전에 없이 저렴한 가격으로 색색별로 다채로와졌다.

 

(왼쪽)데이빗 디스데일(David Tisdale)이 디자인한 〈시크니쳐 컬렉션: 피크닉용 커틀러리 세트(Signature Collection: Picnic Flatware Place Setting)〉, 1986년, 양극처리 알루미늄, 20.5x2.4x0.5cm. Photo: © Smithsonian Institution

(오른쪽)현대 디자이너들은 전통 도자 제작용 재료로는 불가능한 생생하고 현대적 감각의 색상을 한 도자기를 3D 프린터로 인쇄해 낸다. 마이클 이든(Michael Eden, 영국)이 디자인한 나일론 소재의 3D 프린팅된 〈키 큰 녹색 꽃병(Tall Green Bloom Urn)〉, 2012년, 41x18cm. 소장: Cooper Hewitt, Smithsonian Design Museum. Photo: Ellen McDermott © Smithsonian Institution

 

 

광학(光學, Optics) 즉, 빛의 과학의 관점에서 색이란 서로 다른 물질의 표면에서 반사되는 빛의 파장으로서 측정 가능한 객관적이고 물리적 현상이다. 일찍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색의 조화는 음악에서 음조의 조화와 같다고 설명했다. 그 후로부터 약 2,000년 후인 1704년, 영국의 물리학자 이삭 뉴튼은 그의 저서 〈광학(Opticks)〉에서 빛의 반사, 굴절, 변곡을 색채와 연관시켜 설명했다. 다시 그로부터 약 100년 후 독일의 철학자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빛이란 보는 사람마다 달리 인지되는 주관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며, 뉴튼의 광학 이론에 정면 도전했다.

 


20세기 미드센츄리 양식과 유럽 미래주의풍 소비자용 인테리어 디자인 제품은 당시의 낙관적인 사회경제적 분위기를 반영해 경쾌하고 선명한 원색을 즐겨 채용했다. Photo: Matt Flynn © Smithsonian Institution

 

 

미술가와 디자이너들은 선대 과학자와 철학자들이 설파한 광학 이론과 색채론에서 영감받아 시각적 예술 작품으로 해석했다. 럭셔리 금속세공업자 루이 컴포트 티파니(Louis Comfort Tiffany)는 찬란한 그 유명한 〈공작(Peacock)〉 꽃병을 디자인해 당시 사람들의 눈을 놀라게 했다. 옵티컬 아트 미술가 요셉 알버스(Joseph Albers)와 제자 빅터 모스코소(Victor Moscoso)는 요셉 알버스의 색채 이론에서 거론된 색채 간 상호작용에 기초해 그 유명한 소프트 에지 하드 에지 실크스크린 작품 연작을 창조했다.

 


마씨모 비녤리(Massimo Vignelli)가 크놀 인터내셔널(Knoll International) 가구업체를 위해 디자인한 광고 포스터 디자인, 1967년, 종이에 오프셋 리토그라프, 81.3x120.7cm. Photo: Matt Flynn © Smithsonian Institution

 

 

20세기 산업을 위한 응용 미술로서 디자인과 디자이너들은 어떻게 세상 속 색을 인지하고 색을 이해하고 디자인 창조에 활용할까? 특히 근현대 디자이너들에게 색은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에 중요한 요소로 사용됐다. 디자이너 마씨모 비넬리(Massimo Vignelli)는 1974년 뉴욕 지하철 노선도 디자인 작업에서 복잡한 뉴욕시 지하철 노선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그 전설적인 8색 컬러 코드 시스템을 고안했다. 디자이너들의 필수품인 팬톤(Pantone) 색상표도 디자이너와 생산자 사이의 효과적인 의사소통과 자원절약에 기여했다.

 


미국의 각 가정 방방마다 한 대씩 놓여있는 가장 전형적인 유선 전화기. 특히 연분홍색은 소녀와 젊은 여성들의 감성에 효과적으로 호소했다. 헨리 드라이퍼스가 디자인한 〈공주(Princess)〉 전화기, 1993년, 주형 플라스틱과 금속, molded plastic, 10.5x21.5x10cm. 소장: Cooper Hewitt, Smithsonian Design Museum. Photo: Ellen McDermott © Smithsonian Institution

 

 

그런가하면 인간의 감각과 감성의 견해에서 볼 때 색은 개인적 경험, 문화와 언어, 기억과 같은 주관적 맥락에 따라 다르게 각인될 수 있는 주관적이고 변동적인 실체이기도 하다. 대중 소비재 상품 시장은 그같은 원리를 십분 활용하여 소비재와 제품디자인을 더 보기 좋고 더 매력적으로 둔갑시키는데 색의 심리학을 거침없이 응용했다. 미국의 전설적인 산업디자이너 헨리 드라이퍼스(Henry Dreyfuss)가 디자인한 분홍색 〈공주〉 전화기는 당시 미국에서 새로운 막강한 소비자층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사춘기 소녀와 젊은 여성들을 상대로 생산되기 시작해 디자인 아이콘이 됐다.

 


플라스틱은 견고하고 가벼우며, 각종 인조 색상 표현에 용이하다는 점이 장점이다. 애플 산업디자인팀과 조나단 아이브가 디자인한 아이맥(iMac) 컴퓨터 키보드와 마우스, 1999년, 주형 플라스틱, 고무, 유리, 금속, 전자 부품 포함. 소장: Cooper Hewitt, Smithsonian Design Museum. Photo: Ellen McDermott © Smithsonian Institution

 

 

최초로 홈 컴퓨터를 대중화시킨 애플은 1999~2000년 사탕처럼 매끈하고 매력적인 색상과 표면질감을 한 아이맥 컴퓨터를 발표했다. 디자이너 조나던 아이브(Jonathan Ive)는 욕실용품 디자인을 했던 경험과 감각을 살려 과일맛 사탕을 연상시키는 선명한 반투명 소재로 외장을 디자인해 회색 일색이던 기존의 PC 시장에 찬물을 끼얹으며, 곧 전자제품업계의 도미넌트 디자인(dominant design)으로 등극했다.

 

“영혼은 생각의 색으로 염색된다.” 고대 로마 제국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썼다. ‘좋고 현명한 생각을 하고 받아들이고 내 인생에 응용하라’고 썼고, “색은 영혼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위력을 지니고 있다”고 근대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는 말했다. 색은 도처에 있고 인간의 눈길을 사로잡고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감정상태, 사고, 판단력에 영향을 끼치는 위력을 발휘함을 뜻한다.

 


유리는 색상을 가장 잘 표현하고 전달하는 우수한 디자인 용품 소재다. 이탈리아 유리용품 제조업체 살비아티(Salviati & Company)가 1960년대에 생산한 불어 만든 수제 유리 꽃병(Vase), 26.4x23.2x6.2cm. 소장: Cooper Hewitt, Smithsonian Design Museum. Photo: Matt Flynn © Smithsonian Institution

 

 

뉴욕 쿠퍼 휴잇 국립 디자인 미술관(Cooper Hewitt Smithsonian Design Museum)은 2014년부터 3년 간의 미술관 재건축 공사를 마치고 이 미술관에 보관돼 있는 방대한 소장품 중 190여점을 선정해 기원전 3~5세기부터 21세기 현재까지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색을 활용하여 인류의 시각 세계에 영향을 끼쳐왔는가를 살펴보는 특별전시회 ‘포화색(飽和色): 색채의 매력과 과학(Saturated: The Allure and Science of Color)’을 2019년 1월 13일까지 전시한다.

 

글_ 박진아(미술사가·디자인컬럼니스트, jina@jinapark.net)
사진_ All images courtesy: Cooper Hewitt, Smithsonian Instit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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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 칼럼니스트
사회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한 미술사가·디자인평론가로 현 월간미술 오스트리아 통신원, 미술·디자인·문화 분야 기고가·서적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1994~1997년 뉴스위크 한국어판, 1997년 월간 디자인의 객원기자로 시작해 2013년까지 정기 기고했다. 1998~2000년 미국 스미소니언 미국미술관, 뉴욕 모마, 이탈리아 베니스 구겐하임 컬렉션에서 일한 후 2000년부터 현재까지 오스트리아에서 미술과 디자인 분야에서 기고 및 번역 일을 하고 있다. 개인 홈페이지(Jinapark.net)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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