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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우. 울. 증

2018-03-29

 


 

김나현의 <Black Dog>은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가의 경험이 진솔하게 발현된 연출사진에서 우울증의 감정과 내면의 어둠이 전해진다. 

 

Black Dog ⓒ 김나현

Black Dog ⓒ 김나현

 

 

예술은 작가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렇기에 작가로서 남다른 아픔이 있다는 것은 종종 축복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삶의 괴롭고 힘든 경험을 축복이란 말로 쉽사리 표현할 수 있을까. 고통스러운 삶의 터널을 지나는 동안 벌어진 치열한 투쟁이 예술로 발현되었을 때, 우리는 그 작품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김나현의 작품 <Black Dog>은 작가가 직접 겪은 ‘우울증’의 경험이 발현된 것이다. 물론 타인의 이야기가 주된 소재지만 결국은 ‘나’로부터 출발한 작업이며, 그 과정 자체가 자신과의 긴 싸움인 것으로 보인다. 밖으로 표출하지 않았던 내면의 어두움을 진솔하게 작품에 담아낸 김나현. 그녀는 떨리는 마음으로 4월 1일까지 진행된 <Beginning 291- 뉴 폴더>전시를 통해 작품을 공개했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는 젊은 작가가 내밀한 속사정을 세상에 드러내는 데에는 분명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Black Dog ⓒ 김나현

Black Dog ⓒ 김나현

 


1442명을 통해 우울증을 다시 보다

평소엔 아무렇지 않은 듯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자신을 잠식하는 커다란 존재가 불쑥 튀어나온다. 18세 고등학생 김나현에게 갑작스럽게 우울증이 찾아왔다. 그때부터 그 증상은 감기처럼 반복되었고 어느새 그녀의 일부분이 되었다. ‘죽고 싶은 순간마다 카메라를 들었다’는 고백에서도 느껴지듯, 우울증을 작업의 주제로 선택한 건 그녀에게 피할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작업의 시선은 자신에게서 타인으로 옮겨간다. 작가는 3년간 우울증을 앓고 있는 1442명과 이야기를 나눴고, 4명의 환자, 그리고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한 2명의 유가족을 직접 만났다. 그리고 그들이 표현한 우울증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연출하여 <Black Dog>시리즈를 완성했다. 

물론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우울증이란 병에 대해 너무도 잘 알기에 수많은 환자들과 대화하는 과정은 더더욱 조심스러웠다고 한다. 얘기를 나누며 상처를 들춰내야 한다는 것이 가장 두려운 상황이었다. 그들의 말에 공감해야 하는 것 자체가 작가에게 힘든 시간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 명의 우울증 환자로서 그들의 아픔을 대변하는 동시에, 병을 극복한 경험을 통해 환자들에게 용기와 위안을 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Black Dog ⓒ 김나현

Black Dog ⓒ 김나현

 


은유적 이미지 속 코드

18세에 죽음을 생각하며 찍은 필름사진 두 장. 잠을 이루지 못하던 새벽에 홀로 방에 앉아 촬영했던 그 사진이 <Black Dog>시리즈의 시작이었다. 초기 작품들은 직접적인 표현이 두드러진다. 자해 흔적이 보이는 손목, 손편지 형식의 유서처럼 대부분 ‘날 것’에 가까운 이미지들다. 이러한 작업이 자칫 보는 이들에게 폭력적으로 비춰질 수 있다고 판단한 작가는 우울증 증상에 대한 글을 은유적으로 시각화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발전시킨다. 추상적인 감정을 언어로, 언어를 시각이미지로 재해석하여 우울증에 대해 관람자들이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는 틈을 마련한 것이다. 배 위에 식물을 올려놓은 사진, 물이 담긴 유리병에 일그러진 얼굴이 투영된 사진, 두 작품을 보면 사진 속 코드를 찾게 된다. 어딘가 불편하게 누워 있는 자세, 프레임에 불안하게 잘린 신체, 표정은 알 수 없지만 무기력해 보이는 눈동자, 지나치게 하얀 방 등. 작가가 설치한 단서들은 하나같이 우울감이란 정서를 향해 놓여 있다. 두 사진은 ‘나의 양분이 빨아 먹히는 것 같다’, ‘숲속 깊은 곳 호수에 눈만 밖으로 내놓은 채 잠겨있는 것 같다.’는 우울증에 대한 표현을 시각화한 작품이다. 최근에는 모델을 배제한 채 신체의 일부나 물체만으로 연출하여 사진을 찍는다. 이미지를 점점 비워나가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작업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Black Dog ⓒ 김나현

Black Dog ⓒ 김나현

 

 

치유의 작업

오랫동안 남몰래 우울증을 키웠던 작가는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내놓은 이 작업으로 병을 이겨냈다. 살기 위해 시작했던 작업이 정말로 그녀를 살린 것이다. 작업을 통해 치유를 경험했고, 투병 중인 많을 사람들에게 힘이 되기 위해 심리와 상담에 대한 공부를 계획하고 있다. 3년 동안 진행해온 <Black Dog>이 완성됐지만, 그녀의 작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마침표는 영영 없을 수도 있겠다. 완치되었다 해도 언제라도 불쑥 다시 찾아올 수 있는 우울증처럼 말이다. 

감상은 오로지 관람자의 몫이다. 하지만 이 작업을 통해 많은 현대인이 앓고 있고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우울증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볼 필요는 있겠다. 혹여 병을 앓고 있을지도 모르는 주변 사람들을 돌아볼 따뜻한 계기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김나현 대학 재학 시절부터 자신이 경험했던 우울증을 시각화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서울예술대학교에서 예술사진을 전공했고, 졸업 후 독일 베를린에서 시각예술 전반에 대한 공부와 작업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2017년 아미미술관에서 <사진과 예술의 미래들> 그룹전을, 2016년과 2014년 ASYAAF 아시아프 참여 작가로 선정되어 그룹전을 가졌다.

 

에디터_ 박윤채 

디자인_ 전종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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